속담 1 :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쓸데없이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한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어떤 상황일까.
우리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다.
보릿고개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굶었다. 먹을 게 없었다. 귀신도 먹을 게 없었다. 제삿날도 먹을 게 없고, 부엌을 가봐도 먹을 게 없었다. 귀신은 광(안방 옆 곡식창고)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보릿고개에 이어서 모내기를 한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모내기를 해야하는 볍씨는 먹지 않는다.
귀신은 볍씨 즉, 씻나락이라도 먹어야할 지경이었다. 씻나락은 가장 딱딱하게 말린 쌀알이다. 한 톨을 꺼내 껍질을 벗기려면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귀신이라도 먹어야 한다. 한 톨을 까서 입에 넣으니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다시 한 톨을 집어 껍질을 벗기려는데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끄럽게 하면 안방에 사람들이 듣는다.
귀신은 배는 고프고, 쌀 껍질은 벗겨지지 않고, 안방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있고하니 궁시렁 거리면서 광에서 한 톨씩 볍씨 껍질을 쌀 알을 먹는 상황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상황이 정확히 이해되었다. 인터넷에 뒤져봐도 이런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속담 2 : 호박씨 깐다.
호박씨 깐다는 ‘몰래’ 호박씨 깐다 또는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은 겉으로는 얌전한 체, 조숙한 체, 어리석은 체 하면서, 뒤로는 약싹빠르거나, 교태스러운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호박씨만 그런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호박씨를 많이 까먹었다. 그래서 나는 호박씨를 까먹는데, 몰래 까먹는다가 들킨 이야기 정도려니 하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다. 그런데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호박씨 깐다는 뜻은 호박씨 자체를 까는 것이 아니라, ‘알을 깐다’ 처럼 호박씨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몰래 호박씨 만든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호박 꽃은 꽃이라기 보다는 이파리처럼 크다. 호박 이파리는 더 무심하게 생긴 이파리다. 벌나비가 오건 말건 무감각한 잎사귀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듯 한다. 그런데 벌 나비의 입장에서는 호박꽃은 너무나 큰 꽃이니 그 유혹이 강력하다. 사람이 보기에는 꽃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호박꽃에 벌나비는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그렇게 암술과 수술이 만다 호박씨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호박꽃을 찬찬히 본다. 정말 벌나비가 엄청나게 드나든다.
무심한 듯 벌나비를 꼬시고, 벌나비를 만나 호박씨를 만들어 내는 장면을 속담으로 만들어낸 조상들의 재치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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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3 :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예상치 못한 재주를 가지고 있을 때’ 쓰는 속담이다.
어쩌다 굼벵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의 대표가 되었을까. 굼벵이는 매미의 유충으로 썩은 풀 속이나, 흙 속, 농작물의 뿌리 근처에 산다. 꼼찌락 꼼지락 거리기만 할 뿐 이동도 거의 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가만히 웅크려 있는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지능이란게 있을까 의심되는 모양으로 가만히 있다. 이런 이유로 굼벵이는 행동이 느린 사람이나 벌레 같은 것을 부를 때 사용된다.
땅을 파면 가끔 굼벵이가 있는데, 땅에 노출되면 잽싸게 몸을 동그랗게 오므린다. 그렇게 데구르르 굴러 떨어져 멀리 이동한다. 굼벵이가 도망가려고 꿈지럭 거렸다면 바로 동물들에게 발견되어 잡아 먹혔을 것이다. 그런데 굼벵이는 몸을 둥그렇게 오므려 딱 흙이 굴러떨어지는 속도로 데구르르 구른다. 그렇게 적으로부터 숨어 도망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굼벵이는 약으로 많이 쓰였는데, 동의보감에 자세히 쓰여 있다. 악혈과 어혈을 치료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간기능 개선, 혈액순환개선, 혈전치료, 항암작용, 당뇨병, 기력회복, 숙취해서,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만병통치약이란 얘긴다. 그만큼 효능은 선뜻 믿기지 않는다. 매미의 유충이니 17년간 땅 속에 있을 것이고 통통한 애벌레이니 단백질이 가득할 것이다. 먹어도 해가 없는 곤충이나 먹으면 건강에 나쁠 것은 없다고 하겠다. 의약적 효과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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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4 : 꿔다놓은 보릿자루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거나, 존재감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보리자루’와 ‘꿔다놓은’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이번 기회에 찾아봤다. 연산군때 박종원의 집에서 반란 모의를 하고 있었다. 성희안의 눈에 한 사람이 유독 거슬렸는데, 그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성희안은 모인 사람의 수를 세어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이기로 한 사람보다 한 명이 더 많았다. 성희안은 박종원에게 이 사실을 귓속말로 전했고, 박종원은 성희안이 가르킨 사람을 찬찬히 보았다. 박종원은 껄껄 웃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옆집에서 빌려온 보릿자루와 자신의 갓과 두루마기였기 때문이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인조반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놀라운데, 선뜻 믿기지는 않는다.
속담 5 : 며느리 밑씻개
속담은 아니다. 풀 이름이다. 며느리 밑씻개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는 풀이다. 풀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섬뜩히고 슬퍼서 속담 시리즈에 포함시켰다. 예전에는 종이가 귀해 평민들은 대변을 본 후에 풀로 엉덩이를 닦았다. 호박잎을 비빈다거나, 연한 커다란 잎사귀로 뒤처리를 했다.
며느리 밑씻개라는 유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미워서 부드러운 이파리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닦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냥 하는 말이고 이 풀로 밑을 닦을 순 없다. 실제로 닦지는 않았겠지만, 그 옛날 집안에서 며느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풀 이름이라 들을 때마다 섬뜩하고 슬프다.
씻나락은 가장 딱딱하게 말린 쌀알이다.
씻나락은 볍씨인데…
쌀알은 볍씨의 껍질은 벗긴 즉 도정한 알갱이입니다.
귀신은 씻나락을, 볍씨를 왜 깠을까요? 모내기해야할 소중한 알곡인데 말이죠.